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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 보고 및 평가(안)

 

2013.01.25.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

 

1. 선투본 대선투쟁: 경과 및 사업 보고

 

1) 선투본 대선투쟁 경과 보고

 

(1) 선투본 구성 및 후보 선출, 후보 출정대회까지

 

◯ 2012.9.20. 좌파진영, 대선 대응 토론회 개최, 9.25.과 10.12.에 5개 단체(사노위, 진보신당, 좌파노동자회, 노동전선, 노혁추)가 대표자회의에서 ‘대선 기획단’(‘대선투쟁 공동기구 구성을 위한 기획단’) 구성에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나, 10.24. 진보신당 대표자회의에서 “공동대응 진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 10.25.에 변혁모임이 대선기획단에 참여하여 선투본 구성을 논의함.

 

◯ 10.13.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대선투쟁 방침과 노동자대통령 후보 출마를 결의한 후, 10.15.에 ‘노동자계급정당 결의·노동자대통령 제안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대통령 대선공동대응을 제안함.

 

◯ ‘변혁모임’의 제안에 동의한 단체와 개인이 노동자대통령 대선공동대응 1차 회의(10.18.), 2차 회의(10.23.), 3차 회의(10.25.)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준비위)’를 구성함.

 

◯ 10.29.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준비위)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양동규)는 ‘노동자대통령 후보 선출 공고’를 하고, ‘변혁모임’에서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을 추천했고, 우영흠 씨가 직접 후보로 접수했음을 확인함.

 

◯ 11.01. ‘노동자 대통령 후보선출(추천)위원회’(위원장 조희주)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김소연 전 기륭지회 분회장을 ‘노동자 대통령 선거투쟁본부 선거관리위원회’에 단독 등록하기로 결정하고 선거인단을 모집함.

 

◯ 11.11. 후보선출대회에서 김소연 후보를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후보출정대회를 가짐.

 

(2) 예비후보 등록~본후보 등록

 

11.12. 김소연 후보, 예비후보로 등록함.

 

◯ 11.13. 선투본 전체회의에서 ‘2012 노동자대통령 선거기획안’과 ‘대선투쟁강령’을 논의하고 대선투쟁의 기조와 방향, 대선투쟁강령 등을 결정함.

 

◯ 11.15. 선투본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의 대선투쟁의 방향과 기조, 김소연 후보 출마의 변, 대선투쟁강령 등에 대해 밝힘. 김소연 후보 민주노총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하고 제안함.

 

(3) 본후보 등록 후 선거투쟁

 

◯ 11.25. 본후보 등록.

 

◯ 11.27.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세상을 뒤엎는 선전포고의 날’ 선언하고, 김소연 후보의 ‘호소문’ 발표함. ‘정치 희망버스 엎어’ 유세 시작함.

 

◯ 12.05. 김소연 후보 TV토론 참석함.

 

◯ 12.15. ‘세상을 뒤엎는 정치대회’(광화문) 개최하고 경북궁 근처에서 유세함.

 

◯ 12.17. ‘노동자대통령 기호 5번 김소연 후보 조직적 선거방해와 집단적 폭행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개최함.

 

◯ 12.18. ‘세상을 뒤엎는 최후 통첩의 날’ 및 기자회견. ‘김소연 후보와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는 18대 대선 이후에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앞장설 것입니다. - 18대 대선투쟁을 마무리하며’

 

◯ 12.19. 투표일.

 

◯ 12.20. 대선 결과에 대한 최종 논평 발표. ‘18대 대선, ‘절망’의 벼랑끝에서 반자본의 정치를 새롭게 세워나가자.

 

2) 선투본 조직체계

 

◯ 후보: 김소연

 

◯ 선거투쟁본부 공동본부장: 노동(김일섭, 이호동, 김정우, 유명자, 조희주, 양한웅, 이정행, 박현제), 참여단체 대표(사노위 장혜경, 노혁추 고민택,), 지역선거투쟁본부장(15인), 박준성, 홍세화

 

◯ 후원회장: 이덕우(변호사) -> 박준성(역사학자)

 

◯ 정책자문단장: 강내희(교수)

- 정책자문단: 강내희, 김경아, 김세균, 김영수, 나원준, 남구현, 박노자, 박준성, 배성인, 손미아, 오동석, 우승명. 유경순, 이광일, 이민환, 이승협, 이재유, 이창언, 전갑생, 제갈현숙, 조돈문, 조승래

 

◯ 집행위원회

- 집행위원장: 이종회(*선거사무장-박점규)

- 기획위원회: 정진우(상황실장), 전장호, 고동민, 김혜진, 유흥희, 고동민, 윤종희, 임용현

- 조직․투쟁․재정위원회: 김태연(위원장), 이황미, 유승철, 박우옥, 김은주, 차윤석 *학생

- 정책․홍보위원회: 박성인(위원장), 이창근, 박석삼, 박정미, 문재훈, 김종호, 유현경, 이정호, 반영진, 최세진, 김태정,

- 후보동행팀: 박점규, 박수정, 사진팀

 

◯ 지역선거투쟁본부: 전남 제외 15개 광역시도

 

3) 선투본 사업 보고

 

(1) 기획위원회

- 2012 노동자대통령 선거 기획(* ‘2012 노동자대통령 선거 기획안’ 참조)

 

(2) 조직위원회

- ‘중앙유세단 및 후보의 선거투쟁 보고 및 평가’

- ‘지역선거운동 기획안’

- 지지선언문 조직: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대학 학생회들’, ‘진보적 지식인들’, ‘울산과 평택의 철탑과 아산 유성의 굴다리난간에서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 ‘전북버스노동자와 화물노동자 지지선언’, ‘민주노총의 전현직 간부들’, ‘진보신당 대표단’,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 문화예술인,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과 네티즌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지지선언 등

- 현장대자보

 

(3) 정책홍보위원회

- ‘대선투쟁강령 / 예비후보자공약집 발간 / 10대 의제, 10대 공약 제출사업 / 점자공약집 / 후보자정보와 재외 공보의 번역 제출 / 선거벽보와 선거공보 / 선거현수막’ 보고 및 평가

- 입장서 / 보도자료 / 성명·논평 / 기자회견문

- 정책질의 및 답변, 정책토론회 참석

- 정책협약: 공무원노조, 대선장애인연대

- 홈페이지: nodongcamp.kr

- 트위터: https://mobile.twitter.com/nodongcamp

- 로고송: 김호철, 꽃다지 등

- 정책자문단

- 동영상: ‘후보출정식 동영상’(11.11.), ‘4대 과제와 10대 강령 동영상’, ‘축제’, ‘착한사람들’

 

(4) 동행팀

- 후보 유세

- 후보 토론회 참석, 언론 인터뷰 대응

- 후보 호소문

 

(5) 재정

 

4) 지역선투본 보고 및 평가

 

(1) 서울

 

(2) 인천

 

(3) 부산

 

(4) 제주

 

(5) 대구/경북(경주)

 

(6) 충남

 

* 경기 / 강원 / 충북 / 대전 / 광주․전남 / 경남 / 울산

 

 

2. 선투본 활동 및 선거 결과 평가

 

“2012년 대선, 우리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그런데 결국 완주해냈다. 그것도 ‘야권연대 반대, 노동자대통령 독자후보’, ‘반자본(반재벌, 반신자유주의)’ 기조로 완주해냈다.

 

보수대연합과 민주․진보대연합의 대결 구도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를 외치는 세력이 작지만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함을 알려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등이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세력에 정치적으로 투항해 버린, 진보정치의 위기․노동정치의 몰락이라는 현실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자본주의(재벌, 신자유주의)를 뒤엎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투쟁하는 노동자들 자신의 정치와 투쟁으로 알리려 한 시도는 끝내 포기되지 않았음을 힘겨웠지만 현실에서 입증해냈다.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하여 독자적 노동정치 자체를 포기해버리려 한 현실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얼마 안되는 좌파 정치역량으로 2012년 대선을 치루어낼 수 있을까 회의하고 우려하는 현실에서, 그래서 노동조합의 일부 상층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등 자유주의진영에 투항해버리고, 현장활동가들이 좌절하여 노동조합‘만’으로 후퇴해 버리거나, 좌파 정치활동가들이 역량 부재를 탓하며 써클정치에 안주해 버린 척박한 노동정치의 현실에서, 그 얼마 안되는 역량을 가지고,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을 역동적으로 완주함으로써, 독자적 노동자계급정치의 가능성을, 그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냈다.

 

그래서 12월 18일, 대선투쟁을 마무리하며 김소연 후보와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는 이렇게 선언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불안・경쟁・차별・환경파괴・전쟁을 낳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투쟁은 이제 그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

김소연 후보와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는 ‘새로운 노동정치’에 대한 열망과 의지와 세력을 결집하여 본격적인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건설에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이자 책임있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호소했다.

 

“자본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투쟁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정권교체를 넘어서 노동자・민중이 직접 정치와 행동에 나섭시다!”

 

만약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이 노동자 민중이 처한 고통스런 현실을 ‘정권교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2012년 대선투쟁 완주는 물론 시작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권교체’ 실패라는 대선 결과에 절망하지 않는다. ‘정권교체’ 실패에 절망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손을 내밀어 “훌훌 털고 정권교체를 넘어서 다시 노동자・민중이 직접 정치와 행동에 다시 나섭시다”고 호소할 뿐이다. 만약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이 득표 자체를 염두에 두어 선거운동을 했다면 초라한 득표 결과에 좌절했을 것이지만,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선투본은 그 득표 결과가 2012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계급정치의 현주소였음을, 그리고 선투본이 2012년 대선에서 절망하는 노동자민중들에게 현실적 희망을 주지못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의 정치, “자본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노동자 민중 자신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 실현하는” 노동자계급정치를 시작해 나갈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의 대선투쟁 평가는 ‘득표’ 결과를 중심으로 성패를 판단하고, 그 평가에 따라 ‘책임 공방’을 다투는 평가가 아니다. 선투본의 대선투쟁 평가는 무엇보다 2012년 대선국면을 통해 드러난 노동자계급정치의 현 주소와 역량에 대한 진단이다. 대선투쟁 준비와 선거투쟁과정에서 준비와 역량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으로 이뤄낸 성과에 대한 확인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준비하지 못했고, 해내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 그 자체이다. 그래서 대선투쟁 평가는 결국 선투본이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로 책임있게 서 나갈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확인하고 공유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1) 선투본 구성 및 선거투쟁 기조 평가

 

(1) 선투본의 ‘대선 기조’ 평가

 

◯ ‘대선기획단’의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완주하는 노동자민중 독자후보, 당 건설 및 대선 대응 분리”라는 정치적 기조와 ‘변혁모임’의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대통령 독자 후보 출마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통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이러한 정치적 기조에 동의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를 결성했다. 선투본은 논의를 거쳐 2012년 대선투쟁의 기조를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 탐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대선투쟁 /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로 결정하여 2012년 대선투쟁에 임했다.

 

◯ 이러한 대선투쟁 기조는 2012년 대선이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간 대결로 굳어지고, 진보정당도 ‘진보적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세력에 투항할 것에 대비해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정치의 독자적 완주의 필요성, 투쟁하는 노동자후보를 내세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독자적으로 정치화 해내고 노동자가 정치투쟁의 주체로 서나감으로써 노동자계급정치를 아래로부터 강화해 나갈 필요성, 그리고 노동 문제를 자본주의체제의 변혁과 연동하여 선전 선동해 나갈 필요성 등에 바탕하여 결정한 것이었다.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을 완주함으로써 대선투쟁의 구체적인 성과와 한계, 득표 결과에 관계없이 대선투쟁의 기조 자체를 견지해냈다.

 

2012년 대선 투쟁의 핵심 기조로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후보’를 내세운 것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정치의 주체가 되어 싸워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얼마만큼 투쟁하는 현장과 현장활동가들을 대선투쟁과 정치의 주체로 세워냈느냐, 얼마만큼 선투본으로 결합해냈느냐에서 여러 한계들이 드러났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개별 수준으로는 결합했지만 투쟁사업장의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공식적인 결합이 이루어 지지 못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공식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투본이 급하게 출발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 노동현장과 사전에 긴밀한 정치적 접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선투본이 특정 정치세력으로만 인식되었고, 김순자 후보의 출마 역시 일정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투쟁사업장 결합 실패했다. 투쟁을 같이 할 세력이지만 정치를 같이 할 준비 관계는 안됐다”는 극단적 평가도 있다. 그런데 이는 한편으로는 투쟁하는 노동현장을 비롯한 노동자계급 전체가 ‘진보적 정권교체’의 환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내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곧바로 선투본에 대한 정치적 동의와 정치적 주체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투쟁이 노동자계급을 계급정치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주요한 계기이기는 하나, 계급정치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결국 노동현장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은 대선국면에서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거꾸로 대선투쟁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결과가 표현되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중요성, 노동현장 활동가를 정치의 주체로 세워나가기 위한 사전 논의와 동의 과정의 조직화, 그리고 민주노총이나 연맹의 정치방침 정립을 위한 전략적 접근 등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선거투쟁이었다. 사실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정치의 강화’의 계기로 삼고자했다. 2012년 대선투쟁은 새로운 노동자계급정치의 출발을 알리는 계기였고, 동시에 계급적 정치활동을 통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노동현장과 일상적으로 결합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이기도 했다.

 

◯ 준비 부족과 대선을 치러내기에 턱없이 열악한 역량 등에도 불구하고, 3가지 기조로 대선투쟁 자체를 완주해 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성과다. “많은 우려 속에서 진행한 후보 전술인데, 끝까지 완주한 것은 의미가 있고 다행이다”, “준비된 정도와 역량에 비해서는 최선이었다. 역량에 비해서 150~200% 해냈다.” 그럼에도 대선투쟁 기조의 실천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점을 평가해야 한다. 하나는 “대부분 선거를 치러보지 않은 여러 단위들이 모였기 때문에 대선투쟁의 상과 기조에 대해서 충분히 통합하지 못하고 출발”했다는 점이다. 사전 논의의 부족과 이후 선투본 내부의 소통 부족으로 대선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한계를 온전하게 극복해내지 못했다. 다음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노동 중심 의제와 이를 한국사회(자본주의체제) 전체의 변혁, 재벌 몰수․사회화라는 정치적 전망 제시를 밀접하게 결합시켜 내지 못한 점이다. 결국 ‘투쟁’ 그 자체만이 부각이 되었고, 무엇을 위한, 어떤 정치적 전망을 위한 ‘투쟁’인지 문제는 충분히 부각시켜 내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세 번째로 ‘야권연대 반대’가 곧바로 ‘노동자계급정치의 강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야권연대 반대는 특정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정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정치 그 자체의 전망과 역량이 대중적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이 지점에서 선투본은 준비부족과 역부족을 드러냈고, 그렇기에 이후 건설할 노동자계급정당이 일상적으로 해야 할 정치활동의 지점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주었다.

 

◯ 대선기획단은 “대선투쟁과 대선 이후 당 건설은 분리한다”고 결정했고, 변혁모임은 10월 15일 ‘노동자계급정당 결의·노동자대통령 제안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 노동자계급정당 건설과 노동자대통령 후보 출마를 결의”했다고 밝혔으며, 이후 선투본은 ‘대선투쟁 기조’의 하나로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로 잡았다. ‘대선투쟁과 대선 이후 당 건설의 분리 및 결합’ 여부에 대해서 선투본은 초기에 명료하게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반자본(반신자유주의) 세력을 광범위하게 결합시켜 나가기 위해 내용적으로는 대선투쟁과 당 건설 분리 문제를 분리했다. 그 이후 대선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대통령 후보에 대한 투표의 목표를 대중적으로 분명하게 제출하고, 대선투쟁의 성과를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계급정치의 강화’로 수렴하기 위해서, 선투본의 논의를 거쳐, 12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노동정치’에 대한 열망과 의지와 세력을 결집하여 본격적인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건설에 앞장서 나갈 것”이며,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이자 책임있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 선투본 구성 평가

 

◯ 선투본은 10월 15일, ‘변혁모임’의 제안으로 ‘변혁모임’ 역량과 투쟁사업장의 일부 활동가들, 그리고 ‘대선기획단’ 역량이 결합하는 수준으로 구성됐다. 변혁모임의 경우에는 대선 대응에 반대하는 세력이 선투본에 결합하지 않았고, 대선기획단의 경우에는 진보신당 대표단이 10월 24일에 공동 대응 중지를 결정했으며, 좌파노동자회 역시 조직적 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일부 역량만이 결합했다. 사실 이 정도의 역량 결합으로 대선투쟁을 치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선투본은 최대한 해볼만큼 해본다는 결의로 선거인단(1,100여명)을 조직하여 후보를 선출했고, 추천인(3,500여명)을 조직하여 예비후보에 등록했으며, 또 예비후보 등록 후에는 그 여세를 몰아 본 후보 등록까지 해서 완주할 수 있었다. 선투본에 결합한 전국의 동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선거인단과 추천인,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지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선투본은 반자본․반신자유주의 세력을 광범위하게 결합시켜 내지는 못했다.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의 ‘진보적 정권교체론’의 환상이 여전히 노동자․민중진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노동자후보를 내세워 대선국면을 돌파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는 선투본의 시도는 준비와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대선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에 대한 입장의 차이, 대선투쟁 자체를 완주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우려, 그리고 투쟁하는 현장과 노동현장활동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결의할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 등으로 반자본․반신자유주의 세력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을 선투본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결합시켜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투본은 대선투쟁 과정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대학 학생회들’, ‘진보적 지식인들’, ‘울산과 평택의 철탑과 아산 유성의 굴다리난간에서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 ‘전북버스노동자와 화물노동자 지지선언’, ‘민주노총의 전현직 간부들’, ‘진보신당 대표단’,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 문화예술인,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과 네티즌들’(“인권, 성소수자의 지지선언은 감동적이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지지선언 등을 이끌어냄으로 이후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노동자․민중투쟁을 정치적으로 결집시켜 나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 선투본 사업 및 활동 평가

 

(1) 선투본 활동 및 조직․사업 개괄

 

◯ 선투본은 11월 25일 본 후보 등록 이후에, 11월 27일 삼성 본관 앞에서 ‘세상을 뒤엎는 선전포고의 날’을 선언하면서 대선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선투본은 선거투쟁의 기본방향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과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의 정치선언’을 잡았다.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후보’는 “자본에 저항하는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후보”로 부각시켜 내려는 것이었고,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의 정치선언’은 “‘보수-자유주의 세력의 기만적인 개혁과 복지를 수용하고 개선하려는 세력’ VS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세력’의 정치적 전선”을 투쟁 그 자체로 현실화시켜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기본 방향에 바탕하여 선투본은 핵심전략을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핵심 요구를 집약하고 대중적 참여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반자본 투쟁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잡았다. 이러한 핵심전략에 따라 김소연 후보와 ‘정치 희망버스 엎어’는 전국의 투쟁현장에 직접 결합하여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의 요구를 아래로부터 집약해내려고 했고, 날마다 ‘의제별 집중투쟁의의 날’을 잡아, 투쟁 현장에서 ‘4대 과제’와 ‘10대 투쟁강령’을 투쟁과 결합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런 투쟁의 흐름들을 12월 15일, 광화문에서 ‘세상을 뒤엎는 정치대회’로 집약시켜 냈고, 12월 18일 ‘세상을 뒤엎는 최후 통첩의 날’로 마무리 했다.

 

 

 

빼앗긴 민중들

 

 

 

 

정리해고

비정규직

투기 경쟁 삶의 불안

차별

배제

핵 전쟁 환경파괴

 

 

 

 

투쟁하는 노동자/민중

 

 

 

 

 

 

 

 

 

 

 

 

 

선거인단

직접선출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

 

 

 

 

 

 

 

 

 

 

투쟁하는 민중의 핵심요구 집약

세상을 바꾸는 우리들의 정치선언

 

 

 

 

 

 

 

 

 

 

의제별 집중투쟁

직접실천 공동행동

 

 

 

 

 

 

 

 

 

 

 

 

12/15 세상을 뒤엎는 정치대회

 

 

 

 

 

 

 

 

 

 

 

◯ 대선투쟁을 위해 선투본은 크게 중앙선투본과 지역선투본(16개 광역시도 가운데 전남과 경북을 제외한 14개 지역)을 구성했으며, 중앙선투본은 공동선투본부장단 아래 집행위원회를 두었고, 집행위원회는 기획위원회, 조직․투쟁․재정위원회, 정책․홍보위원회, 후보동행팀으로 구성했다. 기획위원회는 선거 총괄기획과 유세투쟁을 기획했으며, 상황실 운영,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대응 등의 사업을 했다. 조직․투쟁․재정위원회는 선투본의 조직 사업 전체를 집행해 나가는 한편, 중앙유세단(‘정치 희망버스 엎어’)을 운영하고, 지지선언문을 조직했으며, 선거 재정 업무를 담당했다. 정책․홍보위원회는 정책사업으로 대선투쟁강령 작성, 예비후보자공약집 발간, 선거벽보와 선거공보물, 선거현수막, 정책브리핑 발간, 정책질의에 대한 답변, 정책협약, 정책자문단 구성 등의 사업을, 홍보 사업으로 입장서․보도자료․성명 논평․기자회견문 작성, 홈페이지 및 트위터 운영, 로고송 및 동영상 제작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후보동행팀은 후보와 동행하면서 유세투쟁을 전개했고, 후보와 관련한 대언론사업 등을 담당했다. 대변인은 선투본과 관련한 사안은 정책․홍보위원회에서 후보와 관련한 사안은 후보동행팀이 담당하는 공동대변인제로 운영했다.

 

(2) 12.15. 세상을 뒤엎는 정치대회

 

◯ 선투본의 선거투쟁의 목표와 기조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지점은 ‘12월 15일, 세상을 뒤엎는 정치대회’이다. 선투본은 내부적으로는 12월 19일 투표결과가 아닌, 12월 15일 정치대회를 선거투쟁의 정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기조는 기존의 선거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선거투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2.15. 정치대회를 통해 그간의 의제별 유세투쟁의 성과를 총괄하여,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을 광화문으로 결집시켜 내고, 또 광화문에서의 유세에 이어 청와대로 진격하는 유세투쟁을 함으로써 ‘투쟁하는 노동자후보’를 극적으로 부각시켜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유세 후 경복궁 등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선투본으로서는 최선의 유세투쟁을 전개했지만, 선투본의 역량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을 광화문으로 결집시켜내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규모 유세와 겹쳐 ‘노란’ 물결에 포위되어버린 점도 있지만, 애초 계획한 만큼의 조직적 준비와 결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을 광범위하게 광화문으로 결집시켜 내지 못한 것은 2012년 대선투쟁에서 선투본의 한계였다. 12월 15일을 투쟁의 정점으로 잡았다면 선투본의 제한된 자원(인적, 물적, 정책적 자원)을 최대한 집중했어야 했다.

 

(3) ‘투쟁하는 노동자후보’

 

◯ 선투본은 ‘투쟁하는 노동자후보’전술 기조에 따라 투쟁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선거투쟁을 주체적으로 수행할 선거인단의 직접 투표와 결의를 통해 11.11. 김소연 후보를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선거투쟁에 돌입하였다. 김소연 후보는 11월 25일 본 후보 등록 이후에 ‘의제별 투쟁일정’에 따라 투쟁하는 노동현장과 지역, 불안정노동자들의 밀집지역인 공단 등을 순회하며 그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노동자대통령에 대한 투표나 수동적 지지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들이 투쟁과 노동정치의 주체로 서나갈 것을 헌신적으로 호소했다. 그리고 구속까지 각오하며 삼성과 현대 재벌에 맞서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온 몸을 던지며 투쟁하면서, 후보 스스로 ‘투쟁하는 노동자후보’의 상을 대선투쟁 속에서 헌신적으로 실천했다. 특히 12월 5일의 현대차 본사앞 선거사무소 설치투쟁, 12월 14일 울산 현대차 공장 진입투쟁, 12월 18일 수원 삼성 본사 앞 선거사무소 설치투쟁 등, 김소연 후보의 이러한 선거투쟁은 기존 진보정당운동의 선거유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투본의 준비와 역량의 한계, 빡빡한 투쟁일정 때문에 ‘투쟁하는 노동자후보’가 어떠한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지(“계급정당 건설 문제를 좀 더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제기했어야 했다. 그래야 응집력 생겼을 것이다.”)에 대해서는 충분히 부각시켜 내지 못했다(“목표 가운데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좀 더 집중적이고 공격적으로 해나갓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들은 포기하더라도 TV 유세 한번 등으로”, “TV토론에서 선투본과 후보가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분명하게 부각시킬 대중적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후보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투쟁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사전에 투쟁하는 주체들과 소통이 충분하게 안됐기 때문이다.(“내가 고민한 투쟁이냐가 중요했다. 사전에 투쟁주체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 그리고 전국민을 상대로 한 유일한 기회였던 12월 5일에 있었던 후보의 TV토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투쟁과 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점 등에 대해서는 호소력 있게 얘기했지만, 노동 문제가 어떻게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 한국 사회 전체 변혁의 필요성과 맞물려 있는지 등에서는 선투본의 준비 부족으로 충분하고 설득력 있게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선투쟁의 전 과정에서, 특히 공보물, 벽보, 플랭카드 등에서 후보 자체를 부각시켜 내기 위한 좀 더 체계적이고 세심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본 선거유세가 시작된 후에는 후보동행단과 선투본간에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 2012년 대선투쟁을 통해 ‘투쟁하는 노동자후보’ 전술은 다음의 몇 가지 과제를 남겨주었다. 첫째는 ‘투쟁’과 ‘정치적 전망’을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것인지, 둘째는 ‘투쟁하는 노동자후보’가 대중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지는지에 대한 판단까지도 고려한 ‘대중화 전략’의 마련, 셋째는 선거투쟁본부와 후보간의 유기적인 소통 구조를 어떻게 마련해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넷째는 후보 자체의 부각을 위해 CI(Corporate Identity, 이미지통합작업)에서부터 각종 공보물 준비에 이르기까지의 체계적이고 세심한 사전 준비 등이 그것이다.

 

(4) 유세단 ‘정치 희망버스 엎어’

 

◯ 유세단은 중앙의 ‘정치 희망버스 엎어’유세단과 각 지역별 유세단 등으로 구성되어 선거투쟁을 진행했다. ‘정치 희망버스 엎어’는 기륭노조 조합원들과 대학생들의 헌신적인 결합에 바탕하여 구성되었으며 의제별 투쟁일정에 따라 전국의 투쟁 현장과 지역을 순회하면서 대선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재정과 역량 부족으로 ‘정치 희망버스 엎어’는 한 대밖에 준비하지 못해서 대선기간 동안 전국을 다 순회할 수 없었고, 연사의 부족과 편중된 연사의 배치, 로고송․동영상 등의 준비 부족 등으로 계획한 만큼의 유세투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특히 시작할 때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 희망버스 엎어’의 동력은 확대되지 못했고(“투쟁은 중간에 더 안붙어가는 과정이 됐다. 결국 우리만 싸운 결과가 돼서 안타까왔다”, “이번 선거투쟁은 통쾌했다. 타켓을 정확하게 잡은 거다. 그러나 전투성에서는 성공했으나 확장성에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선투본 사무실을 삼성앞에 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투쟁하는 삼성노동자들이 힘을 받았다.”), 선거 막판에는 역량 배분에 심각한 공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유세단 내부의 정치토론의 부재로 유세일정에 따라만 다니다 보니 전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지역 언론(지역방송, 지역신문)에 대한 계획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으며, 투쟁사업장만 방문하면서 유세단과 지역관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해내지 못한 아쉬움 등이 남았다. 지역 유세단의 경우에는 재정과 역량 등에서 더 열악한 상황에서 선거투쟁을 전개했다.

 

(5) 정책․홍보

 

◯ 선투본의 대선투쟁 준비와 관련해서 가장 방대한 사업이면서도 가장 준비가 부족했고, 그래서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것이 정책․홍보 사업이었다. 사실 정책․홍보 사업은 본격적인 선거투쟁에 들어가지 에 이미 준비를 모두 마치고 시작했어야 했다. 정책․홍보 사업의 기초가 되는 ‘대선투쟁강령’은 4대 과제와 10대 투쟁강령으로 구성되었는데, 11월 중순경에 선투본 전체회의의 토론을 통해 내용을 확정할 수 있었다. 정책․홍보위는 대선투쟁강령에 바탕하여, 예비후보공약집, 선관위 제출용 10대 과제, 공보물, 현수막, 벽보, 동영상, 점자 공보물 등을 제작했고, 의제별 선거투쟁 일정에 맞추어 현장과 부문의 투쟁 요구를 수렴하면서 정책브리핑과 기자회견문, 성명․논평, 현장대자보, 보도자료, 취재요청서 등을 작성했으며, 각종 정책 질의에 답변하고 정책협약을 맺었다.

 

◯ 그야말로 제한된 역량으로 촉박한 일정을 따라 잡으며 사업을 전개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한계와 역부족, 혼선 등을 드러냈다. 대선투쟁강령은 그나마 정책․홍보위 내부 논의와 전체회의에서의 토론, 그리고 자문위원들의 도움, 기존 투쟁요구안의 수렴 등을 통해 정리는 했지만, 시간의 촉박함 때문에 선투본 내부에서도 충분한 토론을 거쳐 이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고, 추상적인 정책적 지향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으로까지 진전시켜 내지 못했다. 특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을 결합시킨 정치적 대안을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했고, 4대 과제를 나열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선거법과 선거실무적으로 요구되는 내용과 형식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준비하지 못함으로써 예비후보공약집, 선거공보물, 현수막, 포스터 등의 작업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특히 대언론 사업은 성명과 논평, 기자회견문 등을 보도자료로 보내는 것, 홈페이지와 트위터를 통해 선투본의 입장과 동향을 알리는 것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었다. 기존 언론의 이른바 군소후보의 외면 등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공동대변인제도 혼선을 빚으면서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 2012년 대선투쟁의 경험은 정책․홍보 사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가장 먼저 정책․홍보와 관련한 사업은 CI 작업에서부터 공보물, 대선공약(투쟁강령), 홍보 전략과 대언론 전략, 홈페이지와 페북, 트위터, 로고송과 영상 등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선거 이전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준비과정에서 ‘후보’와 ‘정책적 내용’을 어떻게 부각시켜 나갈 것인지(“민주노총 요구안 뛰어넘고 있었는가? 새로운 정치적 전망 속에서 노동기본권, 비정규직 문제를 재정리하고 있는가?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정책을 내세웠는데, 변별성이 현장에서는 뭘로 갔는지 모르겠다”, “벽보는 차별성은 있었지만, 후보를 강조하는 점도 있었어야 했다.”), 타후보와의 차별성과 대중적 공감대를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것인지(“대중과 만나는 방식, 특히 조직되지 않은 대중과 만나는 방식이 서투르다”), 그리고 선거투쟁의 주요한 타겟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차별성은 우리끼리만 차별이냐? 다른 사람들과 공감이냐?”, “현장에 대한 분명한 접근방향을 잡고 가지 못했다”, “플랭카드는 노동자들에게는 이해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의 핵심적 지지층이 우리를 찍지 않았다. 확실하게 다 잡고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투쟁하는 현장과는 다르게 일반인들에게는 좀 더 따뜻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정치적 방향과 정책적 내용을 어떻게 집약하고 또 대중적으로 표현해 낼 것인지(“현수막, 홍보물 내용이 어려웠고,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다”, “우리 수준이 너무 높다. 선거를 트로트로 해야 하는데 우리는 클래식이었다”, “결과가 대중적으로 무엇을 확인시켜 줄 것인지에 대해 판단이 부족했다.”), 중앙과 지역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령 플랭카드 등에서처럼 지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배치하지 못했다.”), 준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안(“플랭카드는 거는 것도 늦었고, 특성에 맞춘 배치도 안됐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지역에서 직접 달게 했어야 했다.”) 등에 대해 세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언론 사업의 경우에도 한국사회에의 언론지형에 대한 분석과 판단속에서 대언론사 사업,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의 온라인 사업 등에 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는 투쟁하는 현장노동자들을 카톡을 통해 소통하고 이를 트위터로 연결하여 알려내는 시도를 했는데, 짧은 시간 내에 이뤄낸 성과였다. 특히 재정적인 여건과 정치적 효과 등을 고려할 때, 팟캐스터 등을 활용한 언론 사업은 일상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책자문단을 구성했으나 구성 시기가 너무 늦어서 정책사업을 함께 진행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고, 정책 질의 답변과 정책 협약, 지지선언 등을 통해 여러 단체들과의 정책적 접점을 형성했는데(“각각의 영역에서 급진적 세력 만났다. 이를 어떻게 결집할 것인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후 이러한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6) 선투본 조직 운영

 

◯ 중앙선투본은 역량의 문제를 고려하여 집행위원회 산하 위원회 구성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운영은 선투본 전체회의를 중심으로 주요한 결정을 해나갔고, 일상적인 사안은 집행위원회와 상황실 회의를 통해 결정했으며, 필요에 따라 선투본부장단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중앙선투본의 일상적 운영은 상황실을 중심으로, 중앙선투본과 지역선투본의 일상적 소통은 카톡을 통해 이루어졌다. 선투본의 의사결정과 집행에서 큰 틀에서 문제점은 없었다. 주요한 결정이 몇 차례 선투본 전체회의에서의 보고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고, 어차피 제한된 역량을 가지고 힘겹게 선거투쟁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선투본의 조직운영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지점에서 제기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선투쟁이 끝날 때까지 조직체계 운영이 제대로 안됐다”, “특히 매일매일 점검하면서 대응해 나갔어야 하는데, 애초에 정해진 것 이상을 진행하지 못했다.” 둘째는 “본 선거에 들어가면서 회의와 소통구조가 없어졌다. 그리고 회의는 집회전술 수준에서 마무리해버렸다”, “본 선거 이후에는 선투본의 운영이 위원회 중심이 아닌 사업 중심으로 전환되었는데, 이 점이 매끄럽게 정리가 안돼서 혼란스러웠다.” 셋째는 “공동선투본부장단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넷째, “선투본과 후보동행팀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섯째, 상황실의 경우에 본 선거 이후에 그 위상이 불투명해졌다. 여섯째, 지역선투본의 경우에,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그리고 재정과 역량에서 너무도 어려운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대선투쟁을 전개했지만, “지역에서 동의하는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노력(대전 지역의 정치콘서트 등)이 제대로 진행안됐다”는 아쉬움이 있다. 즉 대선투쟁 기간 동안 “최대한 한 번 정도는 지역에서 모은다는 기획이 부족했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도우겠다는 사람들을 충분히 묶어내지 못했다. 기존의 자기 경험 중심으로만 조직했다. 최대한 열린 자세로 함께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7) 재정

 

◯ 2012년 대선 투쟁에서 선투본의 가장 난제는 ‘재정 문제’였다. 법정 비용(기탁금, 공보물 비용)과 최소한의 선거비용(현수막, 유세차량 등)을 포함하여 최소 7억 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선투본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의 누구도 선투본이 대선투쟁을 완주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목돈이 없으면 대선을 치루어 내기는 힘들다는 공식을 선투본은 넘어섰다. 선투본은 십시일반 민중재정의 원칙에 따라 이런 장벽을 돌파했다. 그것도 짧은 기간 내에 치러낸 점은 기적이었다.” * 재정 사업에 대한 평가는 보강 필요!

 

(8) 선관위원회에 대한 대응

 

◯ (선관위원회 대응 평가)

 

(9) 선투본 해산 전에 해결해야 할 점들

 

* 재정 문제 정리(부채 및 선관위 보고)

* 소송 건: 후보 폭행에 대한 법적 대응 관련해서, 김소연 후보가 4가지 건을 고소했고, 박점규 선거사무장이 2건에 대해 고소당한 상황.

* 평가 관련 수정․보완 및 공개 평가토론회.

* 홈페이지, 트위터 등 유지 문제.

* 지지선언자들과 후보 선거인단과 추천인 등에 대한 감사 편지, 그리고 후속 사업 계획 등.

 

3) 선투본 총괄 평가

 

◯ 김소연 후보를 비롯한 선투본의 활동가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이 혼신의 노력과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완주해낸 대선투쟁이었다. 그래서 준비와 역량의 절대적인 부족과 한계, 초라한 득표 결과와 관계없이 그 주체들의 만족도와 성취감은 컸던 대선투쟁이었다. ‘투쟁하는 노동자후보’전술을 중심으로 ‘야권연대에 반대’하여 ‘반자본(반신자유주의)’의 노동자계급정치의 가능성을 선거투쟁을 통해 지켜내려 했던 시도였고,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정치의 몰락을 온 몸으로 저지해내려 했던 대선투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2012년 선투본의 대선투쟁은 다른 무엇보다 ‘완주’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완주를 하지 않았으면 확인될 수 없었을 지점들, 즉 선투본의 대선투쟁 완주를 통해 확인된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끄집어내야 한다. 2012년 대선투쟁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고자 한 것은 ‘노동자계급정치의 현주소’와 ‘노동자계급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선거권은 노동자계급의 성숙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또 앞으로도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을 통해 확인된 노동자계급의 성숙 정도는 어느 정도였는가?

 

첫째, 투표 결과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노동자계급의 절대 다수가 보수정치 대 자유주의정치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즉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여전히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는 결국 기존의 진보정당(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과 민주노총이 계급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포기하거나 유예하고, 반자본 계급정치의 전망으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준비시켜 오지 못한 결과이자, ‘진보적 정권교체’론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투항한 결과이다. 현실은 ‘정권교체’도 실패했고, 따라서 ‘진보적 정권교체’도 실패했다. ‘역사의 퇴행’(박근혜의 당선)을 막기 위한 ‘진보의 퇴행’의 결과다. 이로써 진보정당의 위기는 2012년 대선에서의 실패를 계기로 진보정당운동의 쇠퇴로 - 이후 서서히 진행되겠지만 - 이어질 것이다.

 

둘째, 민주노총은 2012년 대선국면에서 “독자적인 노동자후보”를 내지는 못했지만,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잘 조직된 유권자 조직인 민주노총” 조합원이 적극 투표에 참여할 것과 민주진보 단일후보인 서울시교육감 이수호 후보와 경남도지사 권영길 후보 당선을 호소했다. 민주노총의 12월 14일 ‘긴급 호소’와 ‘지지선언’은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의 가능성과 그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커다란 전망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고, 여전히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정치적 입장은 공황기에 노동조합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할수록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사회적인 고립, 자본의 임금삭감과 고용 공세 등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안은 계급적 ‘정치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인데,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위기와 맞물려 2012년 대선국면에서 독자적인 계급정치의 길을 포기하거나 유예시켜버렸다.

 

◯ 선투본은 바로 이러한 정세, 즉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정권교체’라는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진보정당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전망 자체를 포기해버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반자본 정치전선을 치려고 시도했다. 그 정치적 방향의 올바름 자체는 이후 스스로 목표로 했던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현실화함으로써 실천적으로 검증될 것이지만, 2012년 대선투쟁 과정에서는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내용과 전망을 제시하고 대중화 해낼 수 있는 능력, 전국적인 조직력과 집행력, 투쟁하는 노동자와 노동현장과 결합할 수 있는 능력 등에서 많은 한계와 역량부족을 드러냈다. 그 결과 2012년 대선에서 ‘투쟁하는 노동자후보’와 선투본이 이후 ‘야권연대 반대’를 정치적으로 구현할 세력으로 힘있게 현실화시켜 내지는 못했다.

 

◯ 선투본의 한계와 역부족에도 불구하고, 선투본이 ‘야권연대 반대, 반자본’의 정치적 기치를 내걸고 독자적으로 완주한 것은 이후 민주․진보대연합을 비판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선투본이 서나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바로 이 점이 이후 노동자계급정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직접 정치를 시도했는데 이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선투본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수년간 투쟁해온 노동자들이 함께 한 대선투쟁기구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선투본 직접 참가나 지지선언 참여 등으로 결합했다. 선투본은 후보선출 과정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하여 후보를 선출했고, 예비후보 등록과 본 후보의 등록에 필요한 기탁금과 선거비용도 모두 민중재정의 원칙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모금을 통해 조성해냈으며, 대선투쟁강령과 정책브리핑도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요구를 최대한 집약했고, 선거투쟁 역시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과 지역의 투쟁과 직접 결합하면서 노동자․민중들이 직접 투쟁과 정치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방식으로 대선투쟁을 했다. 그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계량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 직접정치의 소중한 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확장성에 한계를 드러나기도 했다. 노동조합 차원의 조직적 결의와 참여로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선투본이 노동운동의 분열된 상황에 곤혹스러워 하는 현장 활동가들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현장의 활동가들 역시 선투본의 독자 대응에 대한 회의와 우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선투본에 적극 결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선투쟁과정에서 선투본에 함께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모아내고 함께 대선투쟁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최대한 노력을 해야 했는데, 선투본 조직 구성과 운영 과정에서 기존의 자기 경험과 자기 방식 중심을 극복해내지 못하면서 함께 할 수 없게된 경우도 있었다. 선투본은 최대한 열린 자세로 함께 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 선투본은 대선투쟁 과정에서 김순자 후보의 출마에 대해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두 명의 비정규 노동자 후보라는 점 때문에 노동현장에는 여러 곤혹스러운 상황들이 발생하고 선투본의 확장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선투본이 일체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는 선거투쟁의 기조와 조직화 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선투본의 선거투쟁 기조는 ‘투쟁하는 노동자 후보’를 세우고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거투쟁본부의 구성에서부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선거인단을 구성했고, 대선투쟁 역시 투쟁하는 현장과 결합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김순자 후보 진영과는 ‘비정규 노동자’라는 점 외에 정치적 접점을 형성할 지점이 없었다. 그리고 김순자 후보 진영은 김소연 후보를 지지․지원하기로 한 진보신당의 결정을 어기고 탈당하면서 출마를 강행했기 때문에 더더욱 대응할 지점을 찾기 어려웠다.    

 

◯ 선투본은 무엇보다 2012년 대선투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정치를 직접 내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대중 전체와 직접 대면해보았다. 즉 2012년 대선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 전체 대중과 대면하기 위해 이후 선투본과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역량이 요구되는지를 확인한 것, 그 자체가 성과였다. 어떤 정치세력화를 하든, 한 계급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하려면 최소한 이념과 전략, 전국적 조직과 조직운영 및 집행능력, 대중적(계급적) 기반/영향력과 역사적 비전(시대정신), 그리고 재정 문제 해결(조직운영과 사업) 등이 일상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2012년 대선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선투본은 대선투쟁을 마무리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건설에 앞장서 나갈 것”이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이자 책임있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을 선언했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2012년 대선투쟁의 성과는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완주’를 통해서 자신감과 신뢰를 형성한 점, ‘진보적 정권교체론’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노동자계급정당)를 추구하는 세력이 존재함을 대중적으로 천명한 점, ‘투쟁하는 노동자’를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치적 요구로 집약한 점, ‘4대 과제’와 ‘10대 강령’을 중심으로 대국민 선전 선동을 한 점, 노동자대통령 후보를 대중적으로 부각시켜 낸 점, 그리고 대선을 치러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노동현장 활동가들의 회의와 우려를 불식시켜 낸 점 등은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이는 대선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낼 수 있느냐에 의해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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