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_경향기고글] 2012.03.13.
백기완 선생님, 벌써 여든이시라니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
백기완 선생님, 긴 겨울이 끝나갑니다.
우리네 사람살이도 이렇게 긴 겨울 끝에 봄을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폭풍한설 같은 탄압에 맞서 시린 손 호호 불며 싸우다 어느 결에 피어난 진달래를 보며 아, 봄이 왔구나.
찢겨진 투쟁조끼를 벗고 남루하지만 부릅뜬 깃발도 잠시 내려놓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잔디밭에 앉아 선생님의 옛이야기를 하하호호 웃으며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물 몇 살 때 해고돼서 공원 벤치에서 이슬 맞으며 밤을 새우던 기나긴 밤, 선생님의 책 <자주고름 입에 물고>를 읽었습니다.
“피아노를 팔았다고 우는 담이에게 지금은 피아노보다도 죽어가는 조국을 쳐 깨울 때다.” 깜짝 놀랄 말투로 담아 담아, 딸을 부르시던 그 목소리는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막 인쇄를 끝낸 유인물 보퉁이를 들고 경찰을 피해 다니던 살벌한 거리에서도 담아, 부르시던 그 목소리가 들려 버틸 수 있었습니다.
최루탄이 쏟아지고 군홧발이 휩쓸던 그 무수한 전선에서 앞에 서신 선생님의 두루마기 자락이 깃발보다 든든했던 날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났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이른바 재야인사들이 앞다투어 권력에 줄을 서는 걸 보면서도 늘 민중의 자리를 지키시던 선생님을 뵈며 바로 이 자리가 옳음을 확신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깃발처럼 나침반처럼 등대처럼 늘 그 자리셨습니다.
이제 팔순을 맞는 선생님을 뵈며 고마운 말씀을 어찌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1차 희망버스 때, 제가 크레인에 오른 지 157일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공간,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잊혀지던 시간들. 그때 파도처럼 출렁대던 촛불의 행렬, 언제나처럼 맨 앞에 서 계신 선생님을 뵈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솔직히 든든한 마음이 훨씬 컸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희망버스를 한번도 놓치지 않으셨고, 선생님의 간절하신 바람대로 저희는 살아 내려오고 저희 조합원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한번도 찾아뵙지를 못했는데 어느덧 여든이시라니 사실인가요. 더구나 뜻있는 분들이 갸륵한 잔치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런 상은 못 받으시겠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도 사실인가요.
문득 선생님께서 감옥 안 천장에 입으로 쓰셨다는 시 ‘묏비나리’의 첫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젊은 춤꾼이여/ 맨 첫발/ 딱 한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중략) 언 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딱 한발 띠기에 일생을 걸어라’는 구절이 왈칵 눈자위를 적시네요.
이것은 선생님의 정서이자 우리들 젊은이의 좌우명이 되었지요. 선생님, 그래서 잔칫상은 받으셔야 합니다. 언젠가 그러셨잖아요. “한숨은 결코 주눅 든 심상이 아니다. 모자라는 산소를 보태려는 자연의 기지개”라고.
그렇습니다. 한숨으로 채운 잔을 올리고 싶은 노동자들이 엄청 많을 겁니다. 저도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깨트리지 않으면 깨져야 하는 무산자(시-나의 철학)” “아, 나는 정말 짐승 같은 울화만 남은/ 산도 절도 없는 격정의 단세포더라(시-단세포)”
선생님, 갈아엎어야 할 봄이 왔는데, 벌써 여든이시라는 게 정말이십니까? 우리들은 부정과 싸우는 거리의 젊은 동지로 여겨지는데….
선생님, 주머니를 턴 우리들의 잔은 받으셔야 합니다. 아, 선생님!
2012.3.13 경향신문 기고글에서 퍼옴